
의정갈등이 길어지던 시기, 병원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뉴스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고, 의료 공백이라는 단어가 매일 기사에 올라왔다. 사람들은 병원이 멈출 거라고 했고, 응급실 붕괴 이야기도 계속 흘러나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혼란은 뉴스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응급실 안의 발걸음 수가 달라졌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이 없었다.
콜을 해도 바로 오지 않았고, 설명을 해줄 사람도 부족했다. 남아 있는 의료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지만,
현장은 점점 한계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가장 가까이에서 메우고 있던 건 간호사들이었다.
우리는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의사 확인이 먼저 필요한 상황에서도 간호사들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보호자 설명부터 처치 준비, 환자 상태 판단까지 점점 더 많은 책임이 현장 간호사들에게 쏠렸다.
처음엔 다들 비슷한 말을 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
“환자 보려면 누군가는 해야지.”
맞는 말이었다.
응급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환자는 계속 들어왔고, 누군가는 당장 처치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움직였다.
원래보다 더 빨리 판단했고, 더 많은 일을 떠안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지금 내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거지?’
응급실은 늘 경계가 흐려지는 공간이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직군을 떠나 모두가 뛰어야 했다.
그런데 의정갈등 이후에는 그 경계가 유독 더 모호해졌다.
원래라면 누군가 결정해줘야 할 상황에서 간호사들이 먼저 판단하고 움직이는 순간들. 의료 공백 속에서 현장을 버티기 위해 서로의 역할을 넘나들던 시간들.
환자를 위해서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은 계속 불안했다.
한 번은 보호자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이 거의 다 보시는 것 같네요…”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칭찬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우리는 원래 이런 구조 속에서 일하도록 만들어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간호사는 의사가 아니고, 의사 또한 간호사가 아니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환자의 안전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장은 점점 그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간호사들 덕분에 병원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버티고 있다는 자부심과 동시에, 왜 우리는 늘 무너지는 구조 속에서 희생을 당연하게 감당해야 하는 걸까 하는 회의감도 함께 밀려왔다.
그 시기 응급실 간호사들의 얼굴은 다들 지쳐 있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책임감.
늘어나는 업무.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이어지는 보호자들의 불만과 폭언.
어떤 날은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문득 멍해질 때가 있었다.
‘나는 지금 간호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병원이 멈추지 않게 버티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코로나 때도 그랬다.
결국 가장 먼저 현장을 지키는 건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간호사들은 조용히 버텼다.
누군가는 링거를 잡고 있었고, 누군가는 보호자를 달래고 있었고, 누군가는 응급환자 옆에서 밤새 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버티고 있을수록 점점 투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결과만 바라봤다.
병원이 돌아가는지, 환자가 치료를 받는지, 응급실이 유지되는지.
하지만 그 안에서 누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야간 근무 끝나고 탈의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유니폼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다. 휴대폰에는 밀린 보호자 전화와 단체방 알림이 가득했다.
그 순간 갑자기 너무 허무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당연하게 버티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간호사는 참 이상한 직업이다.
누군가 가장 아픈 순간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픔은 뒤로 미루는 사람들.
그리고 병원은 그런 사람들의 책임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우리는 다시 출근했다.
환자는 여전히 응급실로 들어왔고,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으니까.
아마 의정갈등이 끝난 뒤에도 나는 그 시절을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의료라는 시스템이 결국 누군가의 희생과 책임감 위에 서 있다는 걸 너무 가까이서 봐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늘 간호사들이 있었다.